2014년 5월 15일 목요일

[인터뷰 번역]Rock and Read 047 메지브레이 코이치(MEJIBRAY 恋一) vol.1















초현실의 초전위(avant-garde)

번역:SY (무단배포수정 엄금합니다!)





-촬영은 타카오산(山)에서 하게되었죠

네, 제 출신지에요.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자랐거든요. 타카오 산은 한 100번은  올라갔던것 같아요...

-그렇게나 많이요? 보통 "가까운 곳은 잘 안가게된다"라고 하던데

관광지 사람들은 그럴지 몰라도 하치오지(八王子:도쿄의 중심지에서 벗어난 도쿄의 외곽지역) 사람들은 달라요. 여기 사람들은 누구보다 하치오지를 좋아하고, 또 다른 어디 사람들보다도 하치오지를 좋아하니까요

-그렇군요 맥시멈더 호르몬*이나 FUNKY MONKEY BABYS같은 아티스트들도 이곳 출신이죠

네, 다들 자기 출신지를 좋아하고 밀고 있잖아요? 하치오지 출신인 아티스트분들은 꼭 하치오지 출신이라고 공표하니까요. 그래서 저도 너무너무 말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그런 기회가 생겨서 너무 잘 된거 같아요(웃음)


-하하하 그렇군요. 그런데 코이치군은 어릴때 어떤 아이였나요?

저, 초등학교때부터 머리길이가 지금이랑 같았어요. 그때도 염색했었고


-선생님한테 안혼났어요?

선생님들이 싫어는 하셨지만, 그래도 나쁜짓은 안하니까 딱히. 원래 어릴때부터 남의 말을 잘 안듣는 아이였어요(웃음) 그래도 혼날짓은 안할테니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해줬으면! 하는 주의였어서

-부모님도 마찬가지로?

부모님에게도 혼나는 일은 없었어요.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하면 된다는 주의라서. 방임주의라고 할까요. 아무튼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만 않으면 괜찮았어요.


-초등학생때부터 그랬단 말이에요?

네, 머리도 제일 먼저 염색해 준건 엄마였어요.


-그랬군요. 교우관계는 어땠나요? 

저, 이건 정말 자신있게 자랑할 수 있는데, 누구보다도 친구들이 정말 많았어요. 집에 10명정도 놀러오기도 했고, 침대에서 프로레슬링 놀이를 해서 침대가 엉망이 되기도 하고. 아직도 집에 돌아가면 그 흔적들이 곳곳에 있어요. 구멍에 벽도 나고(웃음)

-그럼 반에서도 중심인물이었겠네요?

항상 곁에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네요. 일단 눈에 띄는걸 스스로가 좋아했어요. 어릴때부터 남들보다 항상 눈에 띄고 싶어했으니까요. 그렇게되면 자연스레 사람들도 주위에 몰려들게 되고.관심도 받게 되니까요

-그치만 중학생이되면 그런 모습이나 행동은 선배나 선생님의 눈에 띄게 되잖아요. 선배한테 눈에 띄어서 곤란하게 되진 않았어요?

그런일도 있었어요(웃음) 중학교때 학교에서 좀 유명한 외국인 선배가 있었어요 짧은 금발머리에, 진짜 절대로 중학생으로 안 보이는 정말 무서운 선배였는데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그 선배에게 불려갔어요.



-아... 그래서 그 선배가 뭐라고 했어요?

근데 막상 그게 좋은 쪽으로, 결국에는 친해지게 되서(웃음) 옛날부터 저보다 나이 많은 연상의 형이나 선배들이 귀엽게 봐주시는 경향이 있어서요, 그래서 같이 놀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거기서 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것 같기도 하고(웃음)

-주로 어떤 걸 하면서 놀았나요?

선배네 집에 자주 갔는데 선배집쪽에 방이 가건물 같은 컨테이너 식으로 되어있는게 있었거든요, 근데 그게 스튜디오 같이 되어있었어요. 드럼세트도 있고 베이스 앰프랑 기타도 있는.

-그럼 거기서부터 음악에 눈을 뜨게 된 건가요?

아뇨 그때는 선배가 드럼 치는걸 보고 멋지다~하는 정도였고 딱히 음악에 흥미는 없었어요

-코이치군이 그럼 음악에 진짜 듣게 된건 언제부터 에요?

아버지가 야자와 에이키치를 좋아해서 그때부터 그런 음악을 차안에서 조금씩 들었던것 같아요


-또래 아이들에게는 좀 거리감이 있는 아티스트 같은데요

아무래도 그렇죠, 하지만 저희 동네에서는 "아버지가 듣는 음악을 듣는 것"이라는 풍습이 있어서(웃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런 아티스트의 음악을 듣는게 자연스러웠어요. 또 중학교때는 사실 그렇게 스스로 음악을 찾아 들으려고 하지는 않았던것 같아요


- 진짜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건 좀 더 지나서군요. 학교 생활은 어떤 편이었어요?

듣고싶은 수업만 들었어요. 저, 운동 정말 싫어해서.. 초등학교때는 그래도 잘 했는데 중학교때 와서는 체육할때 전혀 안나갔어요

-에, 코이치군 혹시 양키*(한국에서는 좀 불량한 학생?정도로 말하면 될까요 정확한 동의어가 없네요)였던거 아니에요?

아니,그렇게 불량한건 아니였어요(웃음)


-그럼 좋아하는 수업은 뭐였어요?

가정시간이요


-의외다!!!!!!

재봉이랑 미싱으로 뭔가 만드는거 좋아했거든요


-복식관계에 흥미를 갖고있었군요

네, 꽤 그런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게 바로 중학교때부터였네요. 아무도 안 입을것 같은 옷을 입고싶기도 했고


-직접 옷을 만들기도 했어요?

네, 그때가 아직 찢어진 데님이 유행하기 전이었는데, 그때 정말 꼭 그게 갖고싶었거든요. 그치만 돈도 없었고, 그래서 헌옷방으로 가서 싼 데님을 사다가 사포질 해서 깍아내고 바느질해서 만들곤 했어요

-그랬군요, 하지만 수업에 출석하지 않으면 졸업이 안되잖아요

근데 그게, 담임선생님이 도와주셔서 어떻게 자라 되었어요. "이 아이는 나쁜아이는 아니에요" 하는 기록부같은걸 써서. 옛날부터 정말 감사하게도 항상 도와주시는 분들이 곁에 있었고 도와주는 사람도 많았던거 같아요(웃음)


-자 그럼 그렇게 해서 고등학교로 올라갔군요

네, 근데 진학한건 좋았는데 다녀보니 좀 아닌것 같아서 결국 2달만에 그만둬 버렸어요. 그때부터 정처없이 방황하기 시작을 해서...


-그렇게 좀 아닌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뭐였어요?

이대로 모두가 가는 길을 간다고 해도 그냥 딱 그 정도일것만 같았어요. 또 고등학교를 꼭 나와야만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구요. 학교에 안 나가도 뭐든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일을 하려면 기술을 배워서 취직하면 되고 대학교에 가고싶으면 검정고시를 치면 되고.  그런 점에서는 좀 보통과는 다른 방식으로 머리회전이 된 감이 없지않아 있기도 하네요. 그래서 결국은 고등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이렇게 꼭 보내는 건 좀 아까운것 같아서..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그때도 특히 뭐라고 하시지는 않으셨어요 "아 그렇게 생각하니?" 정도


-그럼 학교를 그만두면서까지 하고싶은게 확실히 있었다거나?

음 의류매장에서 일은 해보고 싶었어요. 결국 1년동안은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버렸지만. 중학교때 친구들도 결국 학교에 적응을 못 해서 그만뒀거든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랑 어울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인생의 피크였던거 같아요(웃음) 가장 즐거웠던 시기 일지도 몰라요. 바이크를 타고 멀리도 갈 수 있었고, 뭐든 할 수 있어!라는 생각도 들었던 때고.


-그 당시에 인상에 남아있는 기억에는 어떤 것이..?

딱 이거! 하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처음 아르바이트는 했을때 돈을 버는게 이렇게 힘들구나, 하는 충격을 크게 받았었네요. 처음은 옷 가게가 아니라 전통과자집에서 일을 했는데 타카오 산 근처에 있는 "有喜堂本店"이라는 유명한 곳이 있었는데 그 공장에서 만쥬를 만드는 일을 했었어요. 그리고 나서는 하치오지에 있는 구제 옷가게에서 일을 했는데 결국 여기저기 전전했던 기억이 있네요. 다 3개월을 못 버티고 나오는 식이었거든요. 그런식으로 옷 가게에서만 3군데에서 일을 했었고.

-음악을 하려고 했던건 그 당시부터였나요?

네, 오토바이를 타가가 큰 사고가 있었거든요. 밤중에 甲州街道(야마나시 현 쪽으로이어지는 도로)를 달리다가 제가 가장 맨 앞에서 달렸는데 옆에 오던  차에 시속 180킬로 치였어요. 정신차리니까 고속도로 옆 바리게이트를 아주 넘어서 튕겨져 나갔더라구요

-눈을 뜨니 온 몸이 상처 투성이였겠네요

네, 그런데 제가 뼈가 정말 튼튼해서, 부딪히고 공중에서 몇 회전 하고 7미터를 날아갔는데 뼈가 부러지진 않았어요. 그치만 타박상은 엄청나서 지금도 오른손쪽에 흉터가 아직 남아있어요. 당시 친구들도 이미 가망이 없겠다 싶었는지 병원까지 와서는 놀라고 가고.. 어떤의미로를 신기해하기도 하면서 재밌어도 하더라구요



-재밌어하진 않았을거 같아요..(쓴 웃음)

그치만 그때 친구가 많은게 참 좋구나 하고 느꼈어요. 친구가 또 다른 친구를 부르고 바쁜데도 일부러 병문안을 와 주고. 또 방임주의였던 부모님도, 그때까지는 잘 몰랐는데 사고 이후에 정말 감사함을 많이 느꼈어요. 원래 방임주의인 만큼 무엇을 해도 좋았지만 그래서 제가 곤란해 지는 경우 절대 도와주지 않았거든요. 아무리 제가 힘들어져도 "네가 하고싶어서 한 거니까 아빠는 모른다"라고 하셨는데. 하지만 사고가 있고나서 처음으로 저를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이제는 좀 제대로 살아야겠다, 라고 해야하나( 웃음) 그때부터 제 2의 인생이 시작되었네요.









Rock and Read 047 메지브레이 코이치(MEJIBRAY 恋一) vol.1

코이치의 제2의 인생이 시작되는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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