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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지브레이MEJIBRAY 미아MiA Rock and Read 047 퍼스널 인터뷰 1
“ 보통 사람이 10년에
걸려서 해내는 것을 , 저는 1년만에 이뤄내고 싶어요. 더 자세히 말하자면, 60세의 지혜로 지금을 살아가고 싶어요.”
-
저희 잡지에 첫 등장이시네요, 어릴적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이야기 해주세요.
[ 잘 부탁드립니다. 사실
요전에 처음으로 제 등본을 제대로 볼 기회가 있었는데 본적은 치바千葉인데 태어난 곳은 시부야의 히로오広尾(도쿄의 중심시내 지명)더라구요 그리고 유치원때 카나가와 현으로 이사를
했고 그때부터는 거기서 쭉 자랐습니다. 가족은 부모님과 저, 3명(웃음) 정말 평범한 가족이에요. 그치만
아버지가 옛날에 예능 관계 일을 하시고 싶었던 것 같더라고요.
-
오, 배우 같은거요?
[아뇨, 스탭쪽이요. 제작이나 매니지먼트 같이 무대에 서는 건 아니고 서포트 하는
쪽을 하시고 싶었나봐요, 그런데 어머니랑 빨리 결혼을 하시게 되고, 지금의
제 나이또래에 제가 생겨버려서 그 꿈은 포기하셨다고 해요. 아무래도 예능관계 일은 시간도 불규칙하고
자리잡기까지는 경제적으로도 어머니가 힘들어 질테니까요, 그래서 평범한 곳으로 다시 취업을 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본인의 꿈을 미아군에게 말씀하신 적은?
[딱히 그런적은 없네요. 그치만
제가 기타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을땐, 말리지는 않으셨어요. 그렇다고해서 또 적극적으로 밀어주신건 아니지만(웃음) 그래도
이해는 해 주시는 편 이었어요. ]
-
미아군, 고등학교는 히노데日出 고등학교를 나오셨네요.
[네, 그 학교를 추천해
주신 것도 아버지입니다. 예능관련 된 일을 하고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이 가는 학교니까 기타를 우선으로
할 수도 있어서 그렇게 말씀해 주신것같아요.
또 저 정말 공부를 못해서(웃음) 중학교때
성적표가 전부 밑바닥 점수일 정도였으니까요(웃음) 진짜 머리가
나빠서요. 그런 제가 기타는 열심히 하니까 부모님 입장에서는 나름 안심을 하셨는지도 몰라요(웃음)
-어릴적 장래희망은?
[어릴땐 K1 격투기선수나
자위대원이 되고 싶었어요. 뭐든 좋으니 남자답고 강해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초등학교때는 가라테도
배웠어요.
-왜 그렇게 강해지고 싶었나요?
[ 스스로를 단련한다는 것도 있고,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나쁜사람이 너무 싫어서. 학교에도 그런 애들이 있으면 속으로 “ 이자식 언젠가 내가 혼내줄거야”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네요. 그게 강해지고 싶은 이유. 또 가라테도 연습하면 할수록 꾸준이 실력이
늘어나니 정말 재밌었고요. 그치만 그런 격투가의 꿈은 인터넷 게임에 빠지면서 무너져 버렸지만요(웃음) 나중엔 게임만 하게 되어서,
가라테도 격투기도 이제 필요없게 되었어요(웃음) 기타를
시작한 중학교 1학년 말까지 계속 게임마나 했어요. 뭐 게임성적은
학교 성적과 다르게 좋은 성적을 받았지만(웃음) 진짜 몇만명
게임사는 사람중에 1등도 해봤거든요! 성castle을 공격하는 게임이었는데..
-인터넷 게임.. 그 세대
군요. 기타를 접하게 된 계기는 그럼 뭐였어요?
[ Do As Infinity의 “本日ハ晴天ナリ”를 듣고 기타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미아군은 양락의 헤비메탈이나 하드록을 좋아하니까 그건 또 의외 인데요?
[사실 기타를 시작하게 된 루트는 Do As Infinity에요. 친구랑 게임센터에 갔을 때 드럼매니아라는 박자 게임에 이 노래가 있었거든요,
그 때 그 기타의 음이 너무 멋진거에요, Do As Infinity는 정말 기타가 딱 눈에
띄게 표현이 잘 되어있고 멋지거든요. 그래서 그 곡을 정말로 기타로 한번 쳐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 다음날 바로 시디 숍에 가서 악보랑 음반을 구입했습니다. 기타도
갖고 싶었으니까, 진짜 제일 저렴한거라도 좋으니깐 어떻게든 부모님께 졸라서 기타도 샀구요. 그러고 나서 부터는, 기타 밖에 안중에 없었죠. 게임도 전혀 안하게 되었고 기타만 맨날
치게 됐어요. 너무너무 좋아서]
-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었어요?
[ 그러려고는 했었어요. 어느정도
기타를 제대로 치고 싶으니깐 인터넷에서 멤버를 모집하는 데 있으면 연락도 해서 가입도 했는데 연령이 저랑 너무 차이가 나서.. “프로 지향”이라고 하는 곳도 가보면 제가 너무 어려서 만나주지
조차 않는 곳도 많았구요. 그래서 너무 억울했죠. 절대로
제가 나중에 성공해서 다 갚아줄거라고, 그때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고요.
자꾸 그런일이 반복 되어서 이젠 인터넷에서 멤버 모집을 뒤지는 건 그만두고 오프라인에서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결성했습니다. 중2 여름때 야마하의 콘테스트에 나갔는데, 그게 진짜 인생에서의 첫 라이브였네요]
-처음부터 본인들의 오리지널 곡을 연주했나요?
[아뇨, 처음은 카피밴드로
시작을 했어요. 남자 보컬이었지만 제가 밀어붙여서 Do As
Infinity 노래도 했고(웃음) 그리고 그때
처음부터 제대로 기타를 배우고 싶어서 기타학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때 만난 선생님이 엄청난 메탈러여서, 오지 오즈 본 같은 밴드로 연습을 했었어요. 그때부터 저도 메탈을
좋아하게 되었고요. 아무튼 그래서
그 카피 밴드 시절에는 Do As Infinity랑 딥 퍼플을 카피 했었습니다]
-정말 엄청나게 폭이 넓은데요(웃음)
[ 사실 본격적으로 오리지널을 만들어서 연주하는 밴드를 하고 싶었지만, 함께 할 멤버들을 못 구해서.. 중3때까지는 계속해서 카피 밴드를 했었습니다. 콘테스트에도 나가고 가끔
라이브 하우스에도 출연도 하고요. 하지만 같이 하던 친구들이 말로는 프로 지향이라지만 중3 말이 되니까 다들 수험공부로 연습도 소홀하게 되고 (*일본은 고등학교 수험이
일반적임*) 진짜 하고 싶어하는게 맞나..싶었죠]
-미아군은 그럼 구체적인 계획을 스스로가 갖고 있었나요?
[ 기타를 업으로 삼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사실 그때 밴드가 하고 싶었던건 아니에요. 스튜디오 뮤지션이나 곡을
써주는 작곡가가 되고 싶었서든요. 기타를 칠 수만 있다면 좋아서. 밴드는
혼자서 되는게 아니잖아요. 성격도 참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함께 소리를 내어서, 하나의 음악을 연주해야 하는 거니까요. 정말 어려운 작업이죠.
사실 제 성격상 정말 전 제가 다 해야 직성이 풀려서(웃음) 그게 편해요. 다
제가 해야 마음이 편해서요.]
-딱 밴드라기보단, 음악이
정말로 좋았던 거네요
[그렇죠, 정말로 멋진
연주를 하고 싶은 것. 그게 가장 원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앞으로도 프로 뮤지션으로서 활동을 하고 싶어서 친구들은 모두 수험
공부를 시작했지만 저는 그때부터 사무소에 들어갔어요. 고등학교도 예능쪽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많이 가는
학교로 선택을 했고요]
-그 사무소는 기타리스트로서 소속되어 있던거에요?
[네, 맞아요. 그래서 態猫xiongmao라는 밴드의
서포트 기타 오디션에 합격을 하고 그때 그렇게 메이져 데뷔를 했습니다. 그때가 고등학교 1학년때 였네요. 제가 나온 학교는 예능활동과 학교생활을 양립하라
수 있도록 배려하주는 학교였고, 다들 그런 학생들만 모인 곳이라 저랑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 중에는 지금도
활동하는 아이돌이나 탤런트도 있었어요.
그치만
일이 많아서 학교를 잘 안오는 경우가 많았죠. 그렇게 학교를 쉴 수 있는것도 그 학교만의 특징이었고… 근데 저는 사실 그렇게까지 일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레코딩이 있고 리허설이 있으니까..하면서 쉬었던 적도 많았죠]
-그렇군요, 그런 활동은
보통 학교에선 역시 하기 힘들잖아요.
[그쵸, 또 저희는 인터넷 세대이다 보니까 학교 자체의 2챤 같은 게시판이 있었어요. 따돌림 같은 것도 있는 그런 곳인데
아무래도 예능 학교다보니, 오히려 그런데에 이름이 언급되는건 그만큼 의미가 있는 일이기도 했어요. 어떻게 보면 오히려 거기에 그렇게 이름이
올라오는 게 인지도가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특수학교이다 보니까 그렇게까지 따돌림이라기
보다는 누가누가 있다더라..하는 정도의, 그런 정도였던 것
같아요]
-그러네요, 그렇게 생각을
하면 또 다르게 받아 들일 수도 있겠네요.
[네, 학교에서 다들 직종은
다르지만 뭐랄까, 일종의 라이벌 의식같은게 있어서요. 그중에서
전 전혀 유명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친구들 얘기를 듣고 있으면 속상해지기도 했어요.
일할때도 역시 프로로서 임하고 있으니
조금의 실수도 용납 되지 않는건 당연했구요. 자신만의 플레이 스타일을 추구하기 보다는 요구되는 상황에
정확하게 응답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럼 그런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요?
[근데, 그런적은 없었네요.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기타를 치는 게 좋았으니까요. 또 저는 스스로를
빡빡한 상황에 몰아 넣는걸 은근 즐기기도 했구요. 가라테를 배울때도 그랬는데, 스스로와의 싸움이라는게 있잖아요. ]
-그런데, 본인을 중심으로
하는 밴드를 만드는 길도 있었을거라고 생각되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나요?
[ 그렇기도 했지만 우선은 스스로를 시험해 보는 의미에서 그랬던것도
있고.. 적극적으로 밴드를 막 만들고 싶은 생각은 또 안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자극은 많이 받고 싶었으니까 밴드맨들이
많이 모이는 라이브 하우스에도 자주 갔고 셋셧맨으로 출연도 했었어요.
그때 만난 사람들 중에 지금도
사이가 좋은 친구들도 있고, 메지브레이를 하기 전에 했던 밴드 툰 팩토리의 멤버도 그때 만났죠. ]
-그렇군요, 그럼 비주얼계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는?
[ 양락의 헤비메탈을 좋아하게 되고 나서 일본에도 그런 게 없을까? 하다가 가장 비슷한 음악적 성향을 띠고 있는게 비주얼계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장르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곳에 가서 셋션밴드를 꾸리기도 하고 라이브도 했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멤버를 구하러 오는 경우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재밌었죠]
-툰 팩토리에는 미아군이 차후 “가입”하게 된 형태였죠?
[네, 마침 기타 한명이
나가게 되어서 멤버를 모집하고 있던 중에 제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근데 툰 팩토리는 굉장히 pop한
느낌이잖아요 메탈과는 거리가 멀고 속주도 없을 것 같은데 괜찮았어요?
[네 그때는 어찌되었든 기타를 칠 수만 있다면 상관이 없었고 기타리스트로서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여러 장르를 능숙하에 섭렵 하고
싶었고요. 또 기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Do As Infinity 였으니
pop도 아주 싫어하는건 아니었어요. 제가 작곡을 할 때
단순히 격렬한 음악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거든요. 멜로디어스 하고 따라 부르기 쉬운 느낌을 주는 것도
항상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물론
개인적으로는 엄청 격한 음악이 좋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길 생각한다면, 역시 헤비하고 하드한것만
고집해서는 안돼죠. 그리고 당시에
툰 팩토리는 인기도 꽤 있었고 스스로를 수련한다는 면에서도 공부가 되는 기회였으니,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잡지에도 자주 등장 했었고 V-ROCK FESTIVAL에도
출연했었고, 정말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현실과 내부 상황의 갭은 있었지만요…]
-그건 무슨 얘기죠?
[ 네, 잡지에 등장하게
되면서 라이브를 보러 와주시는 분들도 점점 늘어가는데 연습에 지각을 하거나 오지 않는 경우도 많아지고 정말로 진지하게 밴드를 하고 있는게 맞나?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냥 취미로 하는 거라면 물론 이렇게까지 생각은
안 하죠. 팬이라는 존재가 생기고 잡지에도 나오게 되고 지방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져 가고, 응원 해 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이러는건 아니다 싶었어요.
정말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가입 시기도 제가 제일 늦었고, 또
가장 나이가 어려서 뭐라 의견을 말할 처지도 아니였죠.. 진짜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 툰 팩토리를 나와서~메지브레이에 이르기 까지의 인터뷰는
제2부로 다시 이어 집니다...! 조금 만 더 기다려주세요~